
🚨08. 이별 앞에서, 우리가 애도하는 법
🚨애도하는 법 – 이별 앞에 선 우리
💡”인간의 삶에서 가장 슬프면서도 결코 피해 갈 수 없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죽음입니다. 죽은 자는 말이 없고, 그 앞에서 슬퍼하는 것은 언제나 남은 자의 몫입니다. 애도하는 방식은 나라마다, 문화마다 다르지만, 그 안에 담긴 마음만은 결국 하나로 통합니다. 떠난 이를 존엄하게 보내드리고, 남겨진 이들이 다시 살아갈 힘을 찾는 것. 오늘은 세계 각지의 애도와 장례 문화를 돌아보고, 제가 부모님을 떠나보낸 실제 이야기를 나눠보려 합니다.”
1. 세계 각국, 저마다 다른 얼굴을 한 애도
죽음을 받아들이는 태도는 문화마다 놀랍도록 다릅니다. 한국에서는 지역마다 상여를 함께 메고 마지막 길을 배웅하거나, 선소리꾼이 고인의 이력을 노래로 지어 부르며 극락왕생을 기원하기도 했습니다. 오늘날엔 보통 3일 동안 안치와 입관, 발인의 절차를 거치는 3일장이 가장 보편적입니다.
티베트에서는 시신을 새에게 맡기는 조장(鳥葬)을 통해 육신을 하늘로 돌려보내고, 유대교에서는 사망 즉시 최대한 간소하게 장례를 치른 뒤 7일간의 애도 기간(시바)과 30일간의 추도 기간을 지킵니다. 아일랜드의 ‘웨이크’는 가족과 이웃이 함께 고인의 곁을 지키며 상실을 공동체 전체의 몫으로 나누는 자리이고, 발리 힌두교의 ‘응아벤’과 멕시코의 ‘죽은 자의 날’은 오히려 화려한 행렬과 축제 같은 분위기 속에서 영혼을 떠나보냅니다. 특히 서아프리카 가나에는 고인이 생전에 좋아하던 물건 모양을 본뜬 ‘판타지 관’과 함께 신나는 음악과 춤으로 배웅하는 장례 문화가 있는데, 이는 어디까지나 천수를 다 누리고 평안히 떠난 이에게만 허락되는 방식입니다.

2. 어떻게 떠났느냐에 따라, 애도의 결도 달라진다
같은 죽음이라도, 그것을 맞이한 방식에 따라 남은 자의 슬픔은 전혀 다른 얼굴을 합니다. 오랜 투병 끝에 떠난 이를 향한 슬픔은 ‘예기 애도’, 즉 상실을 미리 예상하며 서서히 겪어내는 슬픔에 가깝습니다. 이별을 준비할 시간과, 사랑한다고 말할 기회가 있었다는 점에서 조금은 다른 결을 지닙니다. 반면 사고나 재해처럼 예고 없이 찾아온 죽음은 ‘외상적 애도’로, 죄책감과 반복되는 아픈 기억을 동반하며 일상으로 돌아오는 길이 훨씬 더 험합니다.
나이가 차서 천수를 누리고 떠난 죽음을 우리는 흔히 ‘호상(好喪)’이라 부르지만, 한국어에는 그보다 더 섬세한 구분이 있습니다. 부모님을 떠나보내는 슬픔은 ‘천붕(天崩)’,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이라 부르고, 자식을 먼저 떠나보내는 슬픔은 ‘참척(慘慽)’이라 하여 그보다 더 참혹한 고통으로 구분합니다. “부모는 산에 묻고,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그래서 나온 것이겠지요. 아무리 고인이 오래 살았어도, 그보다 나이 많은 부모가 살아계신다면 그 장례를 쉽게 ‘호상’이라 부르지 못하는 것도 같은 이치입니다.

3. 애도를 노래하고, 시로 남기다
말로 다 담을 수 없는 슬픔을,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노래와 시로 대신 전해왔습니다. 김광석의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는 평생을 함께한 배우자를 먼저 떠나보낸 노년의 마음을 담담하게 그려내며, 세대를 넘어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는 곡입니다.
또한 돌아가신 엄마를 그림움과 감사함으로 그리는 저의 자작곡 을 들려 드립니다.
My Dear Mother, My Endless Song [Mother’s Day Song] 사랑하는 엄마, 당신은 나의 끝없는 노래
시로는 정호승 시인의 「아버지의 마지막 하루」가 있습니다. 임종을 앞둔 아버지 곁에서, 울지 않고 웃어드리겠다 다짐하며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이기에 죽음이 아픈 것이라 되뇌는 이 시는, 부모를 떠나보내는 자식의 마음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 시인이 전는 “죽음 뒤에 남는 것“을 들려 드립니다.

4. 내가 부모님을 보내드린 길
저는 부모님도, 시부모님도 임종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미국에 살고 있다는 시간과 거리의 벽 앞에서, 그 마지막 순간만큼은 제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특히 어머니는 거의 9년을 병상에 계셨습니다. 오랜 투병이었지요. 그리고 우리가 미국에 온 지 겨우 두 달 만에, 어머니의 임종 소식을 들었습니다. 아이들은 아직 어렸고, 갈 수 있는 사람은 저 하나뿐이었습니다. 경황없이 짐을 챙겨 서둘러 공항으로 향했고, 여럿이 함께 쓰는 공항 화장실에서 비행 시간을 기다리며 한참을 울었습니다. 그제서야 비로소 실감이 났던 것 같습니다. 비행기 안에서도 울고, 또 울었습니다. 두 달 전 마지막으로 뵈었던 어머니의 모습이 자꾸만 떠올랐고, 미국에 온 것을 후회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어머니를 보내드렸습니다. 한국에서는 3일장을 치른 뒤 묘지로 옮겨드리는데, 그때가 5월이었고 그날은 비가 많이 내렸습니다. 어머니 묘소에 마지막 흙 한 줌을 뿌리던 순간이 가장 슬펐습니다. 이별은 언제나 슬프고, 아프고, 지금도 그립습니다. 특히 부모님과의 이별은 시간이 지난다고 완전히 치유되는 일이 아니라는 걸, 이제는 압니다. 지금도 Mother’s Day가 되면 어머니 생각이 유독 많이 납니다.
그래서 저희는 이곳 미국에서도, 이 슬픔과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서라도 부모님이 돌아가신 날을 기리고 있습니다. 1년에 네 번, 정성껏 음식을 마련해 제사를 지내드립니다. 늘 하는 일이지만 아직까지는 귀찮거나 힘들다고 느껴진 적이 없습니다. 이상하게도 그런 의식을 치르고 나면 부모님이 그날만큼은 우리와 함께 계신 것 같고, 가족들과 부모님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위로를 받게 됩니다.

5. 마무리 : 애도는, 사랑이 남기고 간 마지막 인사
애도한다는 것은 결국 사랑했다는 증거입니다.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는 아쉬움도, 마지막 흙 한 줌을 뿌리던 그 슬픔도, 해마다 돌아오는 기일에 정성껏 음식을 준비하는 그 손길도, 모두 한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했다는 흔적입니다. 이별은 결코 완전히 치유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슬픔을 회피하지 않고 정성껏 마주할 때, 애도는 비로소 우리를 다시 살아가게 하는 등대가 됩니다. 오늘도 저는 부모님을 그리워하며, 언젠가 다시 만날 그날을 기다리며 살아갑니다.
자주 묻는 질문 (FAQ)
Q. 나라마다 장례 문화가 이렇게 다른 이유는 무엇인가요?
A. 각 문화가 지닌 사후 세계관과 자연환경, 종교적 배경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육체와 영혼을 대하는 방식, 공동체가 슬픔을 나누는 방식이 문화마다 다르게 발전해왔습니다.
Q. 갑작스러운 죽음과 예견된 죽음, 애도는 어떻게 다른가요?
A. 예견된 죽음(예기 애도)은 이별을 준비할 시간이 있어 슬픔이 서서히 찾아오는 반면, 갑작스러운 죽음(외상적 애도)은 죄책감과 반복되는 고통스러운 기억을 동반해 일상으로 돌아오기가 훨씬 어렵습니다.
Q. 부모님을 떠나보낸 슬픔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나요?
A.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다만 제사나 기일 같은 의식을 통해 정기적으로 그리움을 표현하고 나누는 것이 슬픔과 함께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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